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마시타 도모유키 (문단 편집) == 최후와 평가 == [[파일:external/blogs.c.yimg.jp/img_1?1280051460.jpg]] 뛰어난 군사적인 능력을 지녔고,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동시에 뼛속까지 제국주의 사상과 천황 제일 사상에 젖어있던 군국주의적 인물이었다. 또한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하들을 가혹하게 다뤘고, 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부하들은 민간인, 포로 학살을 저질렀다. 부하들이 저지르는 전쟁범죄를 방관 내지 장려한 죄로 후일 B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처형된다. [[http://omn.kr/1wt03|관련기사: 범죄로 얼룩진 '결전'... 교수형 전 대장의 자책]] 그는 어느 정도 독일식의 포로 자치를 생각했다고 하지만, [[츠지 마사노부]]의 독단 행동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실제로는 포로 관리를 허술하게 했다. 당연히 이런 행위는 점령지의 국민들이 일본군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덕분에 덤터기를 쓰고 희생양으로 내몰린 인물이 [[홍사익]].[* 이때 홍사익은 남방총군의 병참감으로 종군했다. 그는 실제로도 전적으로 필리핀에 주둔한 일본군의 후방지원을 책임졌다. 그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야마시타가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 주둔한 20사단 예하 연대에서 근무할 때 홍사익을 만나서 친교를 맺은 인연으로 그 자리에 부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인사는 야마시타가 육군성에다가 '''"홍사익을 보내주지 않으면 나 제대로 못 싸우겠다!"'''라는 식으로 나온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야마시타는 마닐라 [[전범]]재판에 B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다. 그는 츠지 마사노부가 독단적으로 결행한 [[싱가포르]]에서의 대학살과 역시 해군 육전대가 독단적으로 결행한 [[마닐라 대학살]]의 책임 [[전범]]으로 기소되었고, 유죄가 인정되어 결국 사형당했다. 야마시타는 일본군 군인답게 최후까지 군복을 입은 채로 [[총살형]]을 받길 원했지만, 미국 정부는 일본 군인 전범들을 전혀 군인으로 대우 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이는 미국에서 [[독소전쟁]]의 소련처럼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때문에 지옥같은 경험을 해서 그렇다. 일본군도 미국에 의해 해산 상태이기 때문에 이들을 군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야마시타는 하다못해 교수형으로 하더라도 군복을 입은 채로 교수형이 집행되기를 원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결국 그는 다른 일본 군인 전범들과 마찬가지로 '''죄수복을 입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죽기 전 마지막 유언으로 "나는 [[도조 히데키|도조 새끼]]에게 속았다!!" 라는 절규와 도조에 대한 욕설을 남겼다고 한다. 처형된 이후, 그는 다른 B, C급 전범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그것 말고도 야마시타가 처형되기 40분 전에 남긴 유언이 있는데, >군부의 압력으로 인해 겪었지만 모든 곤궁과 결핍에 견딘 10년 동안의 전쟁 체험은 반드시 여러분께 무언가를 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과거의 유물인 군인, 혹은 아첨과 추종을 하는 절조 없는 정치가, 침략전쟁에 합리적 기초를 부여한 어용학자 따위를 결코 참가시켜서는 안 됩니다. 정리하자면 전쟁중에 그가 했던 일들에 대한 자책과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일본에 대한 이상이다. 크게 나누면 4개로, >1은 일본인이 논리적 판단을 기초로한 개인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 >2는 과학교육의 진흥이고, >3은 여자의 교육, >4는 다음 세대의 인간교육 에서의 엄마로서의 책임 등이다. 동시기 [[나치 독일]]의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 상당히 비슷한 인물. [[일본 제국]]의 만슈타인이라 할 만한 인물이다. 일단 만슈타인이 뛰어난 전략과 전술로 영.프군과 소련군을 박살낸 것처럼,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영, 미군을 상대로 뛰어난 전과를 올렸고, 그와 동시에 자국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적국에서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도모유키가 철저한 군국주의적 인물이었듯이, 만슈타인 역시 나치즘을 긍정한 인물이었으며, 둘 다 부정하기 힘든 전범임은 확실히다. 그러나 야마시타는 부하의 잘못까지 자신이 책임자로서 총대를 메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반면, 만슈타인은 끝까지 잘못을 부인하며, 종전 이후에도 국가유공자 취급받으며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점에서 야마시타는 만슈타인과는 달리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만슈타인도 비교적으로 잘 산 것이지 이 사람도 전범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될 뻔했다.그나마 4년형으로 감면되어 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